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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jpg

 

뉴질랜드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에 대한 작은 생각조차 없다면 그것도 참으로 밍밍한 이민생활이다. 주선(酒仙)이니 주호(酒豪)니 하는 축에 끼지도 못하는 평범한 술꾼이지만 십여 년의 이민생활에서 술과의 인연도 생각할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아무리 평범한 술꾼이라고 해도 북반구에서 이민을 온 우리 아시안들은 나름 술집에 대한 애틋한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술집에 대한 인연이 지금까지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돈이 없어 군내 나는 김치에 막걸리만 죽어라 마셨던 학교 앞 할매집, 고모집, 신부집 하던 선술집들이 수십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직장생활 단골술집들은 빌딩 숲 사이 미로 같은 골목길에 있었음에도 지금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런 단골술집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름 없이 밤새 희미한 불을 밝히던 거리의 포장마차들도 있었다. 꼼장어, 닭똥집 같은 먹거리 안주들이 홍합국물의 김 속에서 아른거렸던 기억들은 아마도 잊혀질 것 같지는 않다.

 

뉴질랜드 이민생활에서 아쉬운 것은 단골술집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출퇴근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고 가는 길에 들러 목마른 갈증을 해소해 줄 그런 목로주점은 없다. 아무리 안주거리와 술을 고국에서 수입하고 분위기를 꾸몄음에도 단골술집은 아니다. 이민을 오기 전, 동경에서 한동안 생활을 한 기억이 있다. 일년 여의 짧은 생활이었건만 그곳에서도 단골술집은 분명 있었다. 집 근처 이자카야에 들어서면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며 반겨주던 주인과 어깨를 서로 쳐주거나 눈인사를 나누던 정겨운 술꾼들이 있었다. 그렇게 북반구에서는 단골술집이 있어 인생이 외롭지 않았다.

 

인생이니 어쩌니 하면서 술타령이냐는 빈정거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술과 술집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활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문화적 이질감과 경제적 좌절감이 끓어오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이민생활에서 단골술집이 기억 속에서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마도 경제적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단골 술집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안주와 술값 눈치를 보지 않고 술집을 찾을 수 있는 신분에서 까마득히 멀어져 갔다. 그 흔한 싸구려 선술집도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갈만한 경제적 여유가 사라진 삭막한 이민 생활 속에 함몰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생활이 과연 아시안 이민자들에게만 해당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로이모건 여론조사기관이 18세 이상 키위 113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슈퍼마켓이나 리커숍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진행했던 로이모간의 책임자는 편리함보다 경제적 빈곤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들의 목로주점은 사라졌다.

<소니 리 soniele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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