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이처럼 자주 보며 살았던 기억은 지금까지 없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본 적은 더욱이 그렇게 많지 않다. 서울에서 바다를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 동해로 갔던 기억들은
더러 있다. 오클랜드에서 거주한 덕분에 바다를 실컷 보게 된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다를 보는 게 한 소망이기도 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 바다가 곁에 있건만 바다는 그저 탁 트인 광활한 공간이라는 의미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이따금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바다 앞에 서기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저 바라만보다가 돌아오는 것이 우리들의 바다다. 거칠게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는 오히려 마음만 심란하게 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렁이는 날에는 오히려 바닷가를 피하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과 그들은 정서는 다르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일렁거리는 날에 그들은 바다를 향한다. 기껏 낚싯대를 드리우는 우리들의 레저와는 차원이 다르다. 서풍을 피해서 동쪽 바다를 찾고, 동풍을 막아주는 만을 찾아서 낚싯대를 들이대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은 바람을 쫓아서 차를 몬다. 그 차량의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서핑보드가 매달려 있다. 파도가 없는 날은 무료하게 집에서 흐느적거리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신명이 나서 몰려간다. 파도를 찾아서 직장도 버리고, 파도 곁에 살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 살기도 한다.
북반구 대륙에서 이민을 온 아시안들은 파도를 피하지만 키위들은 높은 파도일수록 넘으려고 하고, 거친 파도일수록 스릴을 느낀다. 해밀턴 서쪽으로 50여킬로미터를 가면 라글란이라는 해변이 나온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큰 파도로 유명한 곳이다. 뉴질랜드 서퍼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서퍼들이 몰려온다. 파도때문이다. 국제서핑대회도 열린다.
크레이그 휴스라는 이가 있었다. 지지난주에 라글란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라글란 파도 속에 묻혔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도 창 밖으로 어김없이 파도가 세차게 밀려왔다. 십대부터 파도를 따라서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지를 떠돌던 그는 80년대 라글란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서핑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날 그 유명한 휴스 서프보드다. 44년 동안 서핑보드를 만들었고 이제는 그의 아들 네트 휴스가 대를 이었다. 뒷마당에서 나무를 깎아서 만들기 시작한 서핑보드는 이제 휴스 라글란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있다.
몽고족들은 바다를 보면 공포에 떨었다. 대륙을 점령하고도 강화도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뻔히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이지만 공포의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다.
우리들은 좋든 싫든 몽고의 유전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 바다가 레저를 넘어서 삶이기도 한 그들과 바다는 언제나 조심하고 두려워해야만 하는 우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로만스, 그러니까 로망을 낭만(浪漫)으로 번역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낭만, 흩어지는 파도다.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해양민족과 깊은 산속 졸졸 흐르는 약수에서 생명을 찾는 한민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뉴질랜드에 이민을 와서도 한민족은 파도를 피해서 살고, 키위들은 파도를 찾아가며 산다. 낙엽이 썩는 흙내를 맡으면 맡을수록 생기를 얻는 우리들과 소금기 밴 파도 냄새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그들이 무슨 인연으로 한 도시에서 어울려 살아간다.
산새소리 들으며 눈 감기를 원하는 우리들과 파도소리 들으면서 잠들고자 하는 그들이 한 도시에서 그렇게 살고 죽어간다. <소니 리 sonielee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