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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람에는 방향이 있다. 계절도 있다. 계절풍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다. 코리아반도의 바람은 이렇다. 동풍은 샛바람이고 봄바람이다. 서풍은 하늬바람이고 가을바람이다.

 

북풍은 된바람이고 겨울바람이다. 남풍은 마파람이고 여름바람이다. 계절풍은 아니지만 북동풍은 높새바람으로 뱃사람들이 칭하던 바람이다. 코리아반도에서 반평생을 살았던 우리들에게 바람은 아직도 우리들의 몸과 정신 속에 코딩되어 있다.

 

우리 몸 속에 코딩 되어 있는 바람을 다시 뉴질랜드에 이민 오면서 리코딩 하려고 하니 그것이 쉽지 않다. 바람은 어릴 적 동요에서 나오듯이 우리들의 정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유행가에도 어김없이 바람이 불려진다. 바람은 의외로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들어놓는다. 그래서 바람이라는 말에는 유난히 감정적인 표현이 겹쳐진다. 봄 처녀, 봄바람, 가을총각, 가을바람 등은 다 그런 것들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로 시작되는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의 시도 있다.

 

바람에 대한 오랜 경험이 노랫말로 나오듯이 뉴질랜드에 대한 바람이 우리에게 익숙해질 무렵이면 비로소 우리 이민자들은 뉴질랜드 사람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뉴질랜드 바람은 코리아 반도의 바람하고는 정반대이거나 엇갈린다. 살랑살랑 불던 그 남풍이 뉴질랜드에서는 피부 깊숙이 스며드는 추운 바람이다.

 

뉴질랜드에서 남풍이 불 때면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오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뉴질랜드에서 서풍은 비구름을 몰고 나타나기 일쑤다. 청명한 가을날 불던 코리아 반도의 서풍이 아니다. 장미화 노래 '서풍이 부는 날'을 들어보면 서풍이야말로 여행을 충동할 만큼 영감을 주는 바람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서풍은 여행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그런 바람이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남풍이나 서풍은 산 너머 남촌에서 부는 바람도 아니고, 여행을 떠나도록 충동하는 그런 바람도 아니다.

 

올 겨울, 뉴질랜드. 유난히 남풍이 많이 불고 있다. 뉴질랜드 남쪽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대륙, 남극대륙이 있다. 얼음 대륙에서 만들어내는 매섭고 추운 바람이 뉴질랜드를 향하여 불어 닥칠 때 우리 북반구 출신의 이민자들은 고향의 따뜻한 남쪽 바람이 더욱 그립다. 비바람을 동반한 추운 남풍을 맞으면서 ', , 나비'를 기다리는 심정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 마음이다. 북풍이야말로 뉴질랜드 이민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바람이다. 코리아반도 출신 이민자들에게 뉴질랜드 북풍은 따뜻한 바람이다. 남태평양에서 불어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풍이 남풍을 만나면 또다시 구름을 만들어 낸다.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남극대륙과 남태평양의 중간에 위치한다. 그래서 항상 흰구름이 만들어진다. 아오테아로아라는 이름은 '길게 피어 오르는 흰구름'이라는 뜻을 지닌다. 우리들은 그렇게 숙명적으로 비, 구름, 바람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가꿀 수 있는 이민자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산 너머 남풍은 가슴 속에 있을 뿐이다. <소니 리 soniele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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