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렌 라이 (Len Lye) - 실험 애니메이션과 키네틱 아트로 유명한 예술가

by 굿데이 posted Oct 20,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첨부 수정 삭제

Len Lye.jpg

렌 라이(Len Lye)는 뉴질랜드의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독학으로 예술을 공부한 후 영국과 미국에서 조각가,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한 예술인이다. 마오리와 사모아 등의 부족 예술을 결합한 독특한 조각과다이렉트 필름 메이킹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한 영화 제작 작업으로 유명해진 그는, 실험 애니메이션의 거장, 1950, 60년대 미국 키네틱 아트 운동의 주요 인물로 알려지면서 현대미술계에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렌 라이의 본명은 레오나드 찰스 후이아 라이(Leonard Charels Huia Lye) 1901 7 5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어 가족 내 종교적 갈등이 심했으며 그런 까닭에 렌은 종교적 관용이 없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지며 자랐다. 아버지 해리 라이(Harry Lye)는 성공회를, 어머니 로즈 앤 콜(Rose Ann Cole)은 아이리쉬 카톨릭을 종교로 가지고 있었다. 1904 7월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 로즈는 가정부,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두 아들을 키웠고 가정 환경은 내내 불안정했지만 그럼에도 렌은 상상력과 재능이 풍부하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자라났다.

 

그의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1908년에 어머니가 프레드릭 포웰(Fredrick Powell)이라는 등대지기와 결혼한 후 케이프 캠벨의 등대에서 보낸 시절이었다 한다. 포웰은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후에 정신 병동에 갇혔고 렌은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 등대, 파도, 바다에서의 삶은 두고두고 렌의 기억에 남아 그의 작품 속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1912년에 렌은 웰링턴에 있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미첼타운 스쿨과 테 아로 스쿨에서 다녔고 자격증을 가지고 졸업했으며, 이후 창고에서 일하면서 웰링턴 테크니컬 컬리지에서 상업에 관련된 과목들을 공부하다 1918년에 미술 쪽으로 관심을 바꾸게 된다. 그의 스승 H. 린리 리차드슨(H. Linley Richardson)과 친구 고든 토비(Gorden Tovey)가 예술을 공부하고자 하는 그를 지지해주었다.

 

웰링턴 공립도서관에 매일같이 드나들면서 그는 퓨처리즘(futurism, 미래파; 입체주의 큐비즘이 발전한 예술운동)과 보티시즘(voticism, 소용돌이파; 소용돌이로 그림을 구성하는 미래파의 일파)을 비롯해 여러 현대 예술 운동 서적을 관심 있게 탐독한다. 1921년경 그는 마오리를 비롯한 소수부족 예술을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고 프로이트의 저작에도 빠져들어 이러한 관심사들이 그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친다. 1922년에 고향 크라이스트처치를 여행한 그는 캔터베리 뮤지엄에서 부족 예술품들을 스케치하며 계속해서 독학으로 전통 미술을 공부했으며, 1924년에는 시드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움직이는 예술; 움직임을 도입한 조각 예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5년까지는 사모아에서 타파 디자인을 탐구했고 이 공부는 후에 그의 유명한 작업인 핸드 페인트 필름 작품에 영감을 주게 된다.

 

마오리의 전통문양인 티키(Tiki), 우니트(Unit) 등이 담긴 스케치북을 가지고 뉴질랜드를 떠난 라이는 영국 해머스미스에 머물면서 지역 예술가, 작가들과 친분을 나누며 자신만의 미술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이른바기계화 예술은 곧 주목을 끌어 영국의 언론에 실리게 되었고 뉴질랜드의 신문들도 이 소식을 고국에 전하기 시작했다. 1929년부터는 영화 제작을 시작해 마오리, 사모아의 전통과 모더니즘을 결합한 독특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만들었고, 그 다음 작업은 라이의 가장 유명한 미술 기법인핸드 메이드 다이렉트 필름 메이킹으로,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암실에서 필름을 펼쳐놓고 스텐실, 컬러 젤, 섬유조직 등으로 덮은 뒤 노출시키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색다른 색채와 질감을 보여준 이 작업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는 이 기법을 평생에 걸쳐 발전시켜갔다.

 

1933 4월에 라이는 영국인 무용 교사인 플로렌스 위니프레드 제인 키링(Florence Winifred Jane Keeling)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게 된다. 2차 대전 중에 그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했으며, 1944년에는 그의 에세이를 읽고 관심을 가진 미국 정치인 웬델 윌키(Wendel Willkie)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데 이 여행에서 뉴욕과 뉴욕의 예술에 큰 인상을 받아 미국에 머무르기로 결정한다. 라이는 뉴욕에서 추상 표현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영화 시리즈를 만들며 생활했으며, 1950 12월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공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렌 라이로 바꾸었다.

 

Len Lye-1.jpg


1948년, 제인과 갈라선 후 그는 미국인인 앤 힌들(Ann Hindle)과 재혼하였고 생계는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앤의 수입으로 꾸려졌다. 1958년에 제작한 영화로 라이는 5000달러의 상금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데 지쳐 예전에 하던 키네틱 조각 작업으로 주 활동을 돌린다. 그 다음 10년간 그는 키네틱 아트 분야의 주요 작가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뉴욕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어 1966년에서 69년까지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딛혀 미술 작업 대신 자신의 미술 이론을 쓰며 집필에 주력한다.

 

1925년 뉴질랜드를 떠날 때 라이는 자신의 예술적 관심을 나눌 이 없는 고립된 처지가 싫어 고향을 등졌지만, 평생 어린 시절 뉴질랜드에서 받은 영감과 그것이 자신의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하며 고국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뉴질랜드가 예술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뉴질랜드의 풍경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커다란 조각품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1968년과 1977년에 뉴질랜드를 방문한 그는 뉴질랜드의 영화사와 함께 영화를 제작했으며, 뉴플리마우스에 있는 고벳 브루스터 아트 갤러리에서는 그가 거대 규모의 조각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렌 라이는 1980 5 15일 뉴욕 워릭에서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콜롬비아대학 의과에 기증되었다. 그해 8월 오클랜드시 아트갤러리에서 그의 추모전이 열렸다.

<김지영 기자>

?

  1. 마리 클레이 (Marie Clay) - 세계적인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교육자

    마리 클레이(Marie Clay)는 읽기와 쓰기에 문제를 가진 아동들을 돕기 위한 문해교육 프로그램인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를 개발한 교육자이자 연구자이다. 클레이가 오클랜드대학 동료들과 함께 개발해 뉴질랜드의 국가적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으...
    Reply0 file
    Read More
  2. 이안 애스필드 (Ian Athfield) - 웰링턴의 이름 있는 건물들을 설계한 건축가

    고전적인 고딕 건물과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진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 40여년간 웰링턴 주요 건축물들의 설계를 맡아 도시의 모습을 디자인한 이안 찰스 애스필드(Ian Charles Athfield)는 가장 잘 알려진 뉴질랜드 건축가 중 한 명이자 뉴질랜드 건축계를 ...
    Reply0 file
    Read More
  3. 베아트리스 틴슬리 (Beatrice Tinsley) - 은하계 진화에 대한 연구로 공헌한 천문학자

    베아트리스 틴슬리(Beatrice Tinsley)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은하계 진화 방식에 대한 연구로 천문학계에 큰 공헌을 한 뉴질랜드의 천문학자이자 우주론자이다. 그녀는 현대 우주론을 선도하였으며 현대 천문학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도 중요한 이론가 중 ...
    Reply0 file
    Read More
  4. 찰스 업햄 (Charles Upham) - 2차 대전 중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두 번 받은 군인

    2007년 12월 초, 뉴질랜드는 와이오우루의 퀸 엘리자베스 2세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96개의 훈장이 도난당하는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뉴질랜드인들이 전세계적으로 보여준 빛나는 활약을 증명하는 이 훈장들 중에서는 2차 대전 영웅 찰스 업햄(Charles...
    Reply0 file
    Read More
  5. 더글러스 라이트 (Douglas Wright) - 뉴질랜드 최고의 안무가로 활동하는 무용가

    뉴질랜드 출신의 가장 뛰어난 무용가 중 한 명인 더글러스 라이트(Douglas Wright)는 자신의 무용단을 설립하고 자신이 창작한 작품으로 뉴질랜드 국내에서는 물론 호주와 유럽에서 공연하여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엄청난 에너지와 생동감을 특징으로 하는 총...
    Reply0 file
    Read More
  6. 대니언 로더 (Danyon Loader) - 아틀란타 올림픽 금메달 2관왕의 수영선수

    2003년 5월, 한 뉴질랜드의 수영선수가 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에 있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200미터와 400미터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 뉴질랜드 최초로 올림픽 수영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
    Reply0 file
    Read More
  7. 제프리 콕스 (Geoffrey Cox) - 영국의 텔레비전 저널리즘을 선도한 저널리스트

    제프리 콕스(Geoffrey Cox)는 유럽과 미국에서 저널리스트, 작가, 외교관, 텔레비전 방송국 경영자로 활약한 뉴질랜드인으로, 1930년대 유럽에서 있었던 격동의 역사와 2차 대전을 기록하고 후에 영국에서 초창기 티비 방송 편집자로 일하면서 티비 저널리즘 ...
    Reply0 file
    Read More
  8. 렌 라이 (Len Lye) - 실험 애니메이션과 키네틱 아트로 유명한 예술가

    렌 라이(Len Lye)는 뉴질랜드의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독학으로 예술을 공부한 후 영국과 미국에서 조각가,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한 예술인이다. 마오리와 사모아 등의 부족 예술을 결합한 독특한 조각과 ‘다이렉트 필름 메이킹’이라는 ...
    Reply0 file
    Read More
  9. 더글러스 릴번 (Douglas Lilburn) - '뉴질랜드 클래식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작곡가

    유럽음악의 자산에 뉴질랜드만의 소리를 가미한 작품들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작곡가 더글러스 릴번(Douglas Lilburn). 뉴질랜드의 목장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고국의 풍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만들어낸 그는 뉴질랜드 음악의 지평을 넓힌 음악가...
    Reply0 file
    Read More
  10. 잭 러브록 (Jack Lovelock) - 뉴질랜드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뉴질랜드 육상계에서는 닉 윌리스(Nick Willis)라는 선수를 크게 주목하고 있다. 그가 작년 영국에서 열린 커먼웰스 게임(4년마다 열리는 영연방국가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잭 러브록(Jack Lovelock)의 영광을 되살릴 ...
    Reply0 file
    Read More
  11. 해롤드 윌리엄스 (Harold Williams) - 58개 언어에 능통했던 언어의 천재

    모두가 외국어 공부에 노력을 다 하는 세계화 시대이긴 하지만, 많은 외국어 중 단 한 가지만 말할 수 있어도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게 된다. 그런데 58개의 언어라면 어떤가? 그렇게 많은 언어를 익힌다는 것이 가능할까? 언어습득에서 가장 뛰어...
    Reply0 file
    Read More
  12. 자넷 프레임 (Janet Frame) - 노벨문학상 후보에 빛나는 대작가

    영화 ‘내 책상 위의 천사’에는 부풀려진 빨강 곱슬머리와 뚱뚱한 몸을 가진 뉴질랜드 시골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녀는 특이한 외모와 심한 소심증 때문에 그야말로 친구라곤 하나 없이 왕따를 당하지만, 실은 예민한 감수성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
    Reply0 file
    Read More
  13. 에드먼드 힐러리 (Sir Edmund Hillary) - 인류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한 산악인

    인류 마지막 정착의 땅, 짧은 역사와 400여만의 인구를 가진 섬나라 뉴질랜드. 이곳에 역사적으로 주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몇이나 될까 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연과 스포츠, 모험을 사랑하는 뉴질랜드인의 선천적 기질은 여러 ...
    Reply0 file
    Read More
  14. 테 랑이 히로아 / 피터 벅 (Te Rangi Hiroa / Sir Peter Buck) - 최초의 마오리 의사

    최초의 마오리인 의사, 선구적 인류학자, 정치가이자 행정가, 1차 대전 참전용사, 뛰어난 스포츠맨, 박물관 관장, 마오리인들의 지도자. 한 사람의 이름 앞에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기도 힘들 것이다.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마오리인의 보건 위생 증진과 폴...
    Reply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