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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나라에서도 기죽지 않는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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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대한 서민들의 사랑은 정말 각별하다. 아무리 좋은 양주가 있고 와인이 있어도 소주만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교민들도 국내 가격보다 비싼 소주를 사랑한다. 와인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뉴질랜드에서 조차 소주의 인기는 죽지 않고 있다. 이런 저런 술 다 먹어봐도 소주만한 술이 없다는 애주가들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서민들이 사랑하는 술의 왕자 자리에 소주는 영원할 것으로 보인다. 소주에 대한 상식은 다양하다. 소주야말로 우리의 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주는 값싼 화학주라고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소주만 마시면 골치가 아프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주는 순수 알코올에 가깝기 때문에 가장 깨끗한 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소주가 경쟁시대에 돌입하면서 소주도 브랜드 값을 하고 있다. 경월소주,보해소주,진로소주하던 것이 산이슬, 산, 그린소주등으로 둔갑하고 있다. 요즈음은 사카린이 없다, 물이 좋다, 첨가물이 없다는 등 저마다 특징을 강조하지만,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곡주를 증류하여 만든 '증류식 소주'가 아니고, 95% 알코올인 주정(酒精)에 물을 타서 적당량의 감미료와 조미료를 넣은 '희석식 소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의 맛은 주원료보다는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물이나 첨가물에 의해서 그 맛이 좌우된다.
원래 우리의 전통 소주는 증류식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고 다시 경제개발을 지상목표로 정하면서 증류식 소주는 완전히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쌀막걸리가 규제되고 있던 시설, 서민들에게 값싼 술을 마음껏 마시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이 오늘날 희석식 소주인 셈이다.
희석식 소주는 우리나라의 양곡정책이 빚어냈다. 희석식 소주는 수십 년 간 서민의 애환을 달래 주었다. 소주는 서민들이 즐기는 안주와 함께 마셔야 제맛이다. 김치에서 빈대떡, 그리고 삼겹살을 거쳐 갈비, 생선회에 이르기 까지 어떤 지방의 어떤 안주와도 어울려도 잘 어울린다. 소주가 지금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사랑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담 없는 가격 때문이다. 고구마나 제당공업의 부산물인 당밀 등 비교적 값싼 원료를 발효시켜 증류공정을 거쳐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값이 쌀 수밖에 없다. 소주는 사실 순수한 술이다. 소주를 마시면 골치가 아프다는 사람은 소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과음이거나 다른 술, 특히 맥주를 섞어 마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소주에 대한 애증이 남다르다. 할아버지로부터 손자까지 소주를 끼고 살아온 3대가 술로 웃고 술로 울고, 술 때문에 즐겁고, 술 때문에 망하고, 술때문에 실수하고, 술자리에서 사업이 성사되고, 술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술마시면서 이별하기도 하였다.
소주가 일본에서 왔다거나 중국에서 왔다거나 국적이 없는 싸구려 술이라거나 하는 험담은 이제 필요없는 것 같다. 이미 소주는 한국 서민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고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 리커숍에서의 소주인기는 단연 최고다. 소주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언제나 돌잔치에서부터 무덤에 들어가는 날까지 마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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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혹은 고영자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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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여자의 사망을 둘러싸고 수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다. 다릉아닌 그 여자는 고영희라는 여자이다. 북한 김정일의 부인으로 실제적으로 퍼스트 레이디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가 사망을 하였으며 당연히 언론에 발표되고 조문이 시작되었을 것인데 이번의 경우는 정반대다. 정말 사망한 것인지 어떤 사인으로 사망한 것인지 장례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도대체 감감소식이다.
북한 당국은 외국 공관의 소수 수뇌부에만 고씨의 사망 사실을 알렸고 이를  극비에 부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고씨가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흘러  나왔고 한국 보도진을 비롯한 각국 취재진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 주재 외국 기관들의 외부 전화 불통, 중국인의 북한 관광 잠정 중단 등 예사롭지 않은 조짐들이 같이 터져 나와 고씨 사망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북한이 고씨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많은 여자가 있었으나 정식 결혼식 여부 등사생활에 대해 공식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김 위원장의 사생활은 그 자체가 극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고영희는 어떤 여자인가.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고씨는 그동안 세간에 알려진 고(故) 성혜림씨, 김영숙씨 등 김 위원장의 여자들 중 실제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사실상 공식 부인이다.
북한이 대내외에 김 위원장의 부인을 공개적으로 소개한 적은 없지만 고씨는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던 70년대 중반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동거를 시작한 이후 줄곧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아왔다. 고씨는 북한 권력층 내부의 비공식 자리에도 김 위원장의 부인 자격으로 참석해김 위원장의 실제적인 부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씨는 수기 '김정일의 요리인'에서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김정일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고 말할정도로 고씨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1953년 6월 16일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교포들의 대대적인 북송행이 이뤄지던 60년대 초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의 본명은 '영자'로 북한이 70년대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자'가 들어간이름을 전부 고치도록 조치함에 따라 영희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과의 사이에 장남 정철(23), 차남 정운(20), 장녀 여정(17) 등 2남1녀를 뒀다. 김 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이 낳은 장남 정남(33)과 정철(23), 정운(20) 등 고씨의 두 아들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한 여자의 사망을 놓고 북한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말 알 수없는 소문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도대체 한 여자의 일생이 아무리 비밀의 왕국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해도 그 마지막 길이 석연치 못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가 사망했다고 하자. 과연 그 마지막이 고영희인지 고영자인지 하는 그런 여자의 마지막과도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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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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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헤어질 때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헤어지는 사람중에 인사를 나누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인사를 나눌 상대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을 하는 사람에게는 "안녕"이라는 인사가 없다.
대한민국이 자살 공화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루에 36명이 자살하고, 이 중 1명만이 정신이상이다. 35명은 정상적인 사람이건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자들은 대부분 고층 아파트나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한강 다리에는 때아닌 전경들이 줄지어 경비를 서고 있다. 투신자들을 막기 위해서다. 투신하는 사람들은 뭔가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한다. 최근 자살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은 거스를 수 없는 본능임에도 미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죽은 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지만 투신자는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 마치 마을 어귀에 목을 매단 한 맺힌 처녀의 주검처럼 말이다. 떠도는 원혼의 한 맺힌 울음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에서 내몰려 고립됐었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소통 부재의 공간에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도피처였다고 말이다.
가지런히 옷과 신발을 정리해놓고 한강 다리에서 아이를 안고 투신한 엄마. 고층 빌딩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 몸을 던져 피범벅이 된 사체. 1년 사이 투신 자살이 두 배로 늘었다. 조용히 방안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보다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아졌단 얘기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동기는 제 각각이었지만 자살 행위로 투신이 선택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투신은 가장 확실한 자살 수단인데다, 피로 물든 사체는 매우 참혹한 광경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신의 의미는 무엇인가. 약을 먹고 조용히 집안에서 숨을 거두거나 한적한 곳에서 목을 매달 수도 있지만 이는 성공률이 낮다. 자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왕 죽겠다고 맘먹은 이상 어떻게 죽을지 고민해볼 것이다. 자살을 더욱 확신하고, 투신과 같은 강력한 자살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가난으로 따지면 우리의 과거 부모님 세대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자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나으면 낫지 못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 생명을 쉽게 포기하고 있다. 흔히 죽을 것을 각오하고 산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하고 말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에서 더욱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상대적 빈곤을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따뜻한 이웃의 정이고 사회의 분위기다. 정이 없고 고립된 사람이 흔히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자살하고자 이 세상의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세상 끝에서도 "안녕"이라고 인사를 나눌 사람을 한 사람쯤 떠올려보자. 그리고 다시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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