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길었던 여름은 가는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수정 삭제

키위 여름의 실종을 이야기하던 때는 작년과 재작년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12, 1월에 이틀에 한번꼴로 비가 내렸으니 얼마나 많은 비였던가 기억할 것이다. 연중 가장 비가 적게 내린다는 2월에도 절반은 비가 내렸다.

 

키위 여름의 실종이라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전통적인 키위 여름은 비치에서 수영을 즐기고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여름이다. 크리스마스를 비치에서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키위들의 여름. 그러나 2년 내내 키위 여름은 사라졌다. 그로 인하여 여름철 휴양객들을 기다리고 있던 피서지의 숙박업소, 식당등이 된서리를 맞았다. 휴가철 경기가 실종된 것이다.

 

그렇게 사라졌던 키위 여름이 올 여름에 찾아왔다. 모처럼 찾아왔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너무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되고 말았다. 부활절이 지내고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오고 있다. 벌써 가을을 상징하는 과일들이 나온지 오래다. 그럼에도 키위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가뭄으로 온나라가 고통을 겪고 있다. 키위 여름이 축복의 여름이 아니라 고통의 여름이 되고 있다.

 

가을이 왔지만 농부들은 가뭄으로 허덕거리고, 한숨은 깊어가고 있다. 부활절, 굳이 종교를 떠나서 뉴질랜드의 부활절은 가을을 알리는 길목에 있고, 결실의 계절이며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뉴질랜드의 종교지도자들이 지난주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했다. 가뭄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화려한 부활의 시작을 알리려는 그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안타깝다. 하늘의 응답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비가 와야만 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목초지인 뉴질랜드의 입장에서는 비가 절대적이다. 목초가 자라야만 경제가 성장한다. 목초가 자라야만 소와 양이 살찌는 것이다. 타들어가는 목초지를 바라보면서 앙상하게 말라가는 소와 양을 일찌감치 죽여야만 하는 농부들의 마음은 안타까움 그것이다. 와인 농장주들이 당도높은 포도농사로 풍년가를 부르지만 그것은 메인 스트림이 아니다. 도시의 주택들을 페인트할 좋은 기회라고 휘파람을 부르는 페인터들도 있지만 그것이 나라의 살림의 근본이 아니다.

 

이제 뉴질랜드라는 땅에는 가을비가 촉촉하게 적셔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뉴질랜드의 부활이다. 간절하게 기다려본다. 가을비가 다시 내리기를 그래서 뉴질랜드의 목초지가 다시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다려본다.

?

공인(公人)이 되려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수정 삭제

공과 사를 구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과 사는 반드시 구별되어야만 한다. 특히 공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인이 된다는 것은 꼭 공직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단체의 대표들은 다 공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단체의 대표도 종교인이면서 공인이다. 한인단체의 대표도 단체장이면서 동시에 공인이 된다. 공인은 공인다워야만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극기가 필요하다. 사사로운 감정을 마구 표출한다는 것은 공인으로써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공인은 반드시 절제된 감정을 가져야만 한다. 특히 공공의 장소에서는 더욱 그렇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공인도 사람인데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공인도 역시 인간이기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의 폭발이 자주 발생한다면 적어도 공인으로서의 자질이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자 사회에는 많은 단체들이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인들도 많다. 공인들이 많다보니 이들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공인은 일반인보다 힘들다는 사실이다. 공인은 말그대로 봉사정신으로 투철해야만 하고 겸손해야만 하며 남을 잘 섬겨야만 한다. 얼마나 힘든 일이고 직분인가.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공인으로서 합당한가를 깊이 생각한 후에 공인의 길을 가는 것이 적절하다.

 

명예와 의욕만이 앞선다고 훌륭한 공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능력보다는 자질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공인으로써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해도 겸손하고 공인다운 공인을 좋아한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한인단체의 장들을 다시 선출하게 될 것이다.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스스로 공인으로써의 자질이 있는지 자가검증을 해볼 것을 권한다. 아무쪼록 다음에는 겸손하고 훌륭한 공인들이 많이 나와서 분위기 좋은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TAG •
?

역송금할 수 있는 나라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수정 삭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한국은 아이엠에프로 국가부도에 이르렀다.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서울역 일대에는 노숙자들이 들끓었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이런 한국의 모습을 연일 보도하면서 한편 걱정, 한편 즐기는 모습이었다.

 

신주쿠, 하라주쿠, 우에노 일대에는 한국으로부터 불법 체류자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일본은 관광비자로 겨우 보름 체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관광비자로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가운데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청년들은 야간에 청소나 배달, 대리운전 등 닥치는 대로 했고, 젊은 여성들은 술집에서 일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불법체류하면서 일을 했는지 알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기억으로 수많은 역송금업체들이 번성했었다. 한국마트에 탁자 하나, 팩스 한대가 전부인 불법 송금업체는 이른바 환치기 지하금융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어렵던 아이엠에프 시절 이런 역송금으로 살아남았다는 가정들이 많다. 한 사람의 역송금이 한 가정을 먹여살렸다. 당시 환율로 엔화는 큰 돈벌이였다.

 

최근 수년동안 시드니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드니 일대에는 역송금 업체가 수십여군데 있다. 이 가운데에는 적법한 송금업체도 있고 불법적인 송금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찌 됐었든지 역송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돈벌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 한국 젊은이들이 한해 무려 4만여명이 들어간다.

 

이들은 최대 2년동안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아이엠에프와 맞먹는 한국의 청년실업을 피하여 호주로 건너간 젊은이들은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 1년에 수천만원을 송금하는 사례도 흔하다. 이런 현상이 한편 부럽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해서 불법체류자들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는 경제적으로 좋은 나라다. 불법체류에 역송금까지 할 수 있는 나라는 경제적으로 아주 좋은 나라다. 비록 적법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인간사회에서 있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때 뉴질랜드 한인사회도 앞으로 역송금업체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경제활동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그렇다.

TAG •
?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143 Next
/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