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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의 정착 (2)

by 굿데이 posted Apr 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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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선에서의 생활>


New Zealand Company.jpg

New Zealand Company는 종교심이 강하고 가난하며 가족이면 더욱 좋고 근면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뉴질랜드로 보냈다. 이렇게 선정된 이민자들의 고된 여정은 이민 선에 승선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에서부터 뉴질랜드까지는 약 4개월의 항해 기간이 걸렸다. 이 이민 선은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위생상태도 좋지 못했으며 매우 불편했다. 특히 New Zealand Company에 의해 운임을 제공 받은 이민자들의 불편함은 더욱 컸었다.

그들은 주 갑판 바로 아래에서 생활해야 했다. 창문도 없었으며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창구는 갑판으로 통하는 해치였다. 그나마 폭풍우가 온다든지 파도가 높은 날들에는 그 통로를 닫아놓아야 했으므로 선실의 상태는 언제나 매우 덮고 답답했으며 코가 막힐 정도로 냄새가 심했었다.

각 가정별로 합판으로 나뉘어진 2.4  1.8 미터 크기의 칸이 배당되었다. 자연히 질병이 급속히 확산되었었으나 의료 처치는 매우 기본적인 것 뿐이었다.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의사의 수당은 줄어들었었으나 워낙 충분치 못한 의료진으로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시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백일해,  이질 등과 같은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아이들의 피해는 더욱 컸다. 한 예로 1842년 Nelson에 도착한 Lloyd호에서는 항해 기간동안 65명의 어린 아이들이 죽었다.

이민자들은 항해를 위해 매트리스와 베게를 무상으로 공급 받았으나 담요와 시트는 각자 준비해야 했다. 선실에서는 각자의 접시, 나이프, 포크, 스푼 및 컵을 사용하였으며 한 달 동안 사용할 양 만큼의 의류를 유지했다. 나머지 의류, 개인 장비, 도구 및 개인 물품들은 배 아래쪽 창고에 보관해야 했다.

음식은 비교적 풍족히 공급되었었다. 성인 1인 당 매일 고기, 밀가루, 감자 및 비스켓이 공급되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버터, 설탕, 차, 커피, 소금, 후추, 오트밀, 건포도 및 2 리터의 물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신선한 야채와 몸을 씻을 수 있는 물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민 선에서의 생활은 극도로 지루하고 불편했다. 특히 날씨가 좋지않은 날들이 계속되면 이민자들은 통풍도 안되고 어두운 선실에서 날씨가 좋아지기 만을 기다리며 생활해야 했다. 아침 6:30이면 질병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위해 갑판과 선실 바닥을 염소로 세척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간이 학교에서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른들은 카드 게임, 바느질, 조각, 춤과 노래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가장 신나는 시간은 역시  식사 때였다고 한다. 날씨가 험한 날에는 남자들은 갑판으로 올라가 선원들을 도왔다.

이 긴 항해기간동안 함께 승선한 이민 동기들은 깊은 우정을 쌓았으며 그 우정은 이민 정착 후에도 돈독히 유지되었다고 한다.

Auckland 개발 및 정착
Wellington 이나 New Plymouth는 New Zealand Company의 계획에 의해 이민자들이 정착한 것에 반해 Auckland는 Hobson 총독의 결정에 의해 1841년 수도로 지정됨으로써 개발 성장되었다. 지금의 Auckland 시내가 있는 곳은 마오리 인구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Auckland시내 곳곳에 마오리 부족들의 Pa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여하튼 1820년대부터 30년 대까지 있었던 ‘Musket War’로 인해 Auckland 지역에 살고있던 많은 수의 마오리 사람들이 죽거나 다른 지역으로 쫒겨 났었으며 1841년 이전까지 Auckland에 살고 있던 Pakeha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Hobson 총독은 영국 식민지 장관에게 Auckland가 날씨도 평균적으로 늘 좋은 편이며 흙의 질도 좋아 새로운 수도로써 적합하므로 이민자들을 뉴질랜드의 다른 지역이 아닌 Auckland로 보내주길 청했다.
Hobson 총독은 또한 Wellington에 정착한 벽돌 기술자, 목수 및 무역 업자들에게 Auckland로 이주하기를 권장하였다.

1841년 9월 15일 Anna Watson호가 새로운 수도를 만들기 위해 Symons장관과 많은 수의 정부관리, 기술자, 도시 계획가들 및 그 가족들을 데려옴으로써 Auckland 개발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Symons 장관은 마오리들이 소유하고 있었거나 그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땅들을 사들였다.  1841년 9월 18일에는 Auckland를 새로운 수도로 시작하는 기념식을 갖고 영국의 국기를 게양하였다. Auckland라는 이름은 Hobson 총독의 친구이자 인도 총독인 Auckland의 이름이며 이 Auckland 총독의 동상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시내 Aotea 광장 옆 잔디밭에 있으니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도시 계획가 Felton Mattew는 Albert 공원을 중심으로 하여 거미줄과 같은 방사능 모양의 도시를 설계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 일부는 좁은 뒷골목이나 하수 처리가 미약한 주택 밀집 지역 및 빈민가로 변하게 되었다.

Auckland가 수도로 지정되면서 뉴질랜드의 다른 지역과 호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새로운 수도에서 보다 많은 교역 및 고용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Bay of Island로부터 임시 정부 기관들이 Auckland 수도로 옮겨질 때도 그곳에서 이미 자리잡고 있던 교역가들 및 정착민들이 함께 이주하였으며 마오리 부족들의 공격을 받고 있던 다른 지역의 이민자들도 Auckland로 모여들었다.

Auckland 의 street 이름들은 대개 초기 이민 정착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많이 따랐으며 이 연재를 통해 그들의 행적이 이야기될 것이므로 앞으로 길 이름과 그 인물들의 행적을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서 다니면 Auckland에 대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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