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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유럽인들의 정착과 마오리

by 굿데이 posted Apr 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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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Marsden.png


쿡 선장의 뉴질랜드 발견 후 선교사들은 마오리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위해 뉴질랜드로 오기 시작했다. 최초의 선교사는 영국 교회 연합 소속의 ‘Samuel Marsden’이었다.  그는 마오리들을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문명화되기에 충분한 ‘고귀한 민족’으로 여겼다. 그는 선생이었던 ‘Thomas Kendall’, 목수이었던 ‘William Hall’ 그리고 밧줄장인 ‘John King’을 선교사로 훈련시켜 뉴질랜드로 파송했다.  Marsdend은 농사, 밧줄제작, 구두제작 등과 같은 실질적인 기술을 마오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선교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가르치려고 했던 기술들은 그 당시 마오리들에게 별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었다.  마오리들은 선교사들과의 교역에 보다 많은 관심이 있었으며 특히 그들로부터 장총을 구입하기 원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교사들은 매우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째, 선교사들이 교역할 물건도 별로 갖지않고 있으며 가난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마오리들은 선교사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선교사들의 장총 판매가 기본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그들에 대해 지극히 실망했다. 둘째, 선교 사역의 또 다른 문제는 마오리 언어와 문화에 대한 선교사들의 무지였다. 실제로 마오리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위한 초기 선교는 거의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유럽인과 결혼 한 마오리 여성에게 최초로 세례를 주기위해서 15년이나 걸렸었다.

그러나 1823년 전직 해군이었던 ‘Henry Williams’가 뉴질랜드에 선교사로 부임한 후 선교 사역은 매우 활발해졌다. 군인으로서의 경력이 마오리들에게 먼저 좋은 인상을 주었으며 또한 그는 동생과 함께 성경을 마오리 언어로 번역하는 데 주력하면서 마오리들에게 영어를 읽고 쓰게 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들은 뉴질랜드 곳곳에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마오리 부족들을 화해시켰으며 교역선 ‘헤랄드’를 준공하여 선교사들이 마오리들과 자유롭게 교역하고 그들을 방문하여 경제적인 독립을 기반으로 하는 선교를 하게 하였다. 1830년, 성경과 기도집이 마오리 언어로 출판 된 이후 상황은 급속히 바뀌어 마오리들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못지않게 문자를 읽고 쓰는 것에도 강한 열의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유럽의 놀라운 기술의 근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전쟁 노예들이 풀려났고 실제로 이 노예들은 북섬 북부 지역에 있던 선교 학교에서 기독교를 배우고 난 후이어서 그들이 각자의 부족으로 돌아간 후에는 기독교를 전도하는 선교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samuel-marsden-1.jpg 마오리 성경의 보급, 문자에 대한 열망,  전쟁 노예였던 자들의 귀향에 따른 영향 등에 더하여 마오리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유럽인들과의 접촉 후 발생하기 시작한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질병, 장총의 위협 그리고 사회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그들의 신이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겼으며 오히려 유럽인들에게 건강, 부 및 기술을 가져다 주신 하나님에게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믿었었다. 또한 선교사들을 부족간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식인 풍습이나 다처제같은 풍습을 사라지게 하는 영향력있는 자들로 섬기기 시작했다.

카돌릭은 영국의 앵글리칸이나 웨슬리 기독교보다 훨씬 후에 뉴질랜드로 전파되었다. 최초의 카돌릭 지도자는 프랑스 출신의 ‘Jean Baptiste Pompallier” 주교였다. 그는 뉴질랜드 여러 지역을 돌며 카돌릭을 전파했다. 그러나 이미 앵글리칸과 웨슬리파 기독교가 자리잡은 후였기에 카돌릭 선교는 매우 힘들었었다. 기존의 기독교에 실망한 그룹들의 협조와 그의 환자들을 고쳐주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카돌릭은 언제나 이방인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와이탕이 조약 후 아이랜드 카돌릭이 유입되면서 많은 카돌릭 학교와 성당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확산되어 오늘이 이르게 되었다.  

다음 호에는 초기 유럽인들과 마오리간의 교역에 대해 이해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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