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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윌딩 (Anthony Wilding) - 윔블던 8회 우승의 테니스 선수

by 굿데이 posted May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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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Wilding.jpg 토니 윌딩(Tony Wilding)으로 불리기도 하는 앤서니 프레드릭 윌딩(Anthony Frederick Wilding)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테니스 선수로, 윔블던에서 8번이나 우승하며 빛나는 활동을 하던 중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젊은 나이에 전사한 인물이다.

 

윌딩은 1883 10 31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태어나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부터 수영, 사냥, 크리킷 등 여러 가지 운동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1902년 뉴질랜드 캠브리지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오직 테니스에만 몰두했다. 그는 1904년부터 1914년까지, 1909년만 제외하고 모두 윔블던에 출전했고 그 중에 여덟 번을 우승하며 수많은 팬들을 이끌었다. 20세기 초 테니스계의 아이돌이라 할만했다. 1900년대초에는 크리킷 선수로 잠시 활약한 적이 있으며 캔터베리 크리킷 팀에 속해 있었던 그는 국가 대항에 출전하기도 한다.

 

초기에 윌딩은 백핸드가 아주 약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1907년 영국으로 항해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유명한 영국 선수들의 경기를 연구한 후 보다 안정적인 백핸드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역시 전직 월드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자 역시 뉴질랜드인이었던 봅 피츠시몬스(Bob Fitzsimmons)로부터 체력 훈련에 대한 조언을 받아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나갔다. 윌딩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으며 담배도 피지 않았고, 테니스 연습 뿐 아니라 일주일에 두 세 번 집중적으로 달리기와 걷기를 하며 건강한 신체를 유지했다.

 

1905년에 처음으로 오스트랄라시아 팀(호주, 뉴질랜드 및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의 일원으로 데이비스 컵에 출전한 그는 다음 해 오스트랄라시안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다. 윌딩은 데비이비스 컵에서만 1905년부터 1909년까지, 그리고 1914년에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자신의 테니스 팀과 함께 집중적으로 훈련을 한 후 1910년에서 1913년까지 연속으로 윔블던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14년에도 우승을 눈앞에 두었으나 간발의 차로 노만 브룩(Norman Brooke)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당시 남자 테니스 선수들은 긴 바지를 입었고 여자 선수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었다. 라켓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공은 흰색이었으며 심판 한 명이 경기를 감독했고 물론 전자 채점기 같은 것은 없었다. 흰 유니폼이 돋보이는 빼어난 외모에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윌딩에게는 여성팬들이 많았다. 1914년 윔블던 결승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치며 경기가 끝나자 수많은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관중석이 하얀 손수건들이 물결로 덮였다고 한다.

 

그의 가장 멋진 경기는 1913년 윔블던 결승에서 젊은 미국 선수 모리스 맥로그린(Maurice McLoughlin)과 펼친 승부로 알려져 있다. 붉은 머리로 유명한 미국 선수 모리스 맥로그린과 매력적인 외모의 앤서니 윌딩이 환상적인 게임을 펼쳐 5세트 접전 끝에 윌딩이 우승했다.

 

학업에 있어서 그는 대학 졸업 후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06년에 영국법조협회의 일원이 되었다. 두 번째로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1909년에는 뉴질랜드 최고 법원에서 법정 변호사와 사무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법률가로서의 준비를 마쳤지만, 변호사 일을 하지는 않았다. 변호사보다는 테니스 선수가 더 좋았고 테니스를 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모터 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다녔다. 그는 모터 사이클을 타고 유럽을 여행한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영국 수상 조지 발포(George Balfour)나 스웨덴의 구스타브 왕과 함께 테니스를 즐기기도 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윌딩은 왕립해군에 들어갔고 프랑스의 전투에서 용맹한 군인으로 싸웠다. 토니 윌딩 장군은 1915 5 9일 프랑스 뇌브 샤펠에서 있었던 오베르 리지 전투 중 사망했으며 프랑스에 있는 군묘지에 묻혔다.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 하나였고 미국 배우인 맥신 엘리엇(Maxine Elliot)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1978년에 그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고 크라이스트처치의 유명한 테니스 장소인 윌딩 파크는 그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윌딩의 윔블던에서의 우승 기록을 깬 사람은 2000년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 한 명 뿐이다. 윌리스 마이어스(Willis Myers)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는 진정한 남자로 성장했고, 영혼에 있어서는 마지막까지도 소년이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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