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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로봇 ‘월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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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로봇 이름이었다.

 

애니메이션계의 명가 픽사의 9번째 장편애니메이션으로 픽사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18천만달러를 들여 만들었다는 <E> 얘기다. 이 로봇의 이름은 강아지 아름과는 비견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세기말적인데, 지구 폐기물 분리수거 기계(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의 약자를 딴 것이다.

 

이미 인류 멸망 후 지구의 모습이 어떨지를 화면을 통해 보는 일은 낯설지 않다. 암회색, 폐허가 된 지구에 콘크리트와 철골의 잔해만이 황량하게 나뒹굴고 있는 것이 영화를 통해 미리 봐온 인류 멸망 후 지구의 모습이다.

 

그런데 거기에 로봇 하나가 일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폐기물을 압축해 네모덩어리로 만드는 폐기물 처리 로봇이다. 7백년 동안 혼자서 폐기물을 네모덩어리로 만들어 빌딩숲을 만들고 있는 이 로봇 이 일하는 시대배경은 29세기, 2810년이다.

 

월이(영자 전환이 너무 많아 이렇게 한국식 이름으로 대체한다. 쓰고보니 옆집 강아지~같기도 하군)는 폐기물 압축을 하다가 재미있는 것들을 런치박스에 수집한다. 이를테면 브래지어, 지포라이터, 루빅스 큐브 등이다. 혼자 일하면서도 근로원칙을 준수하는 월이는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 바퀴벌레도 돌본다. 그리고 일을 끝낸 후 자신만의 아지트에 돌아가 아이팟으로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헬로 돌리>를 보다가 잠을 잔다. 그리고는 아침에는 잠에서 덜 깬 듯 흐느적거리며 일어난다.

 

다른 폐기물 처리 로봇들은 임무를 끝낸 후 다 방전돼 움직이지 못하지만 월이는 스스로 태양열을 이용해 충전하고 자기 몸을 수리도 할 줄 아는 덕에 이 오랜 세월을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월이는 나름 인간처럼 인성을 갖추고 감정을 발산할 수 있도록 진화됐다. 7백년이라는 세월이 가능케 한 일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여러 영화를 통해 인간처럼 진화된 로봇들을 봐왔고 이같은 영화적 경험은 인성(人性)을 지닌 월이의 존재 또한 낯설지 않게 한다.

 

그런 월이가 어느날 빨간 레이저 빛 한 줄기를 목격한다. 그 빛을 따라가보니 우주선이 내려오고 그 안에서 하얀 로봇 하나가 땅 위에 내려온다. 한눈에 이 로봇에 반한 월이. 이 로봇은 멸망한 지구 탐사를 위해 내려보내진 로봇 이브다. 탱크처럼 움직이고 깡통처럼 생긴 월이와는 달리 이브는 달걀 모양의 매끄럽고 하얀 겉모습에 디지털 파란 눈을 지녔다.

 

이브는 월이에게 냉정하지만 월이는 분주하다. 이브와 친해지려고 자신의 아지트에 수집해놓은 온갖 전리품을 보여주고 뮤지컬도 보여준다. 월이의 애타는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임무를 수행하던 이브는 마침 월이가 발견한 식물을 보는 순간 임무을 마치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이브가 귀향길에 오르자 일편단심 월이는 이브가 탄 우주선에 밀항한다.

 

월이의 지구 생활이 마치 무성영화처럼 영화의 초반부를 구성하고 있다면 월이가 이브를 좇아간 우주정거장 액시엄에서의 생활은 화려한 빛깔로 영화의 중, 후반부를 구성한다. 이곳은 자신들이 환경을 파괴한 지구를 피해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의자에 앉아 컨베이어 시스템을 좇아 이동하는 고도비만에 퇴행성 인간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이브를 움직이게 하고 지구에서 가져간 식물을 사수하려는 월이의 액션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윽고 이브와의 교감도 싹튼다.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은 액션영화처럼 움직임이 빠르지만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외계물질의 유입에 따른 시스템의 긴장에 다름아니다. 월이나 월이가 가져온 식물은 모두 외계의 것이며 시스템 내에서 제거돼야 할 것들이다. 이물질을 찾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로봇 모(M-O)는 악의는 없으며 부지런하다.

 

결국 총사령관은 파랗게 살아있는 지구의 식물을 보고는 시스템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구로의 귀환을 결정한다.

 

총사령관의 지구 귀환을 막으려는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악하지 않은 이 영화는 가족영화로 적격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월이와 이브가 폐기물덩어리로 뒤덮인 지구를 돌아다니는 전반부다. <톰과 제리>의 생쥐 제리를 닮은 월이가 부지런히 일하다가 <캐스퍼>의 꼬마 유령 캐스퍼를 닮은 듯한 이브가 나타난 후 그에게 반해 좇아다닌다. 이브가 작동을 멈추자 월이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브를 깨워나게 하려 애쓴다.

 

월이는 무성영화시대 대배우인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처럼 단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도 인간적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모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생물들에 유명 스타들이 목소리 연기를 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는 마당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단순한 기계음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반부의 지구 장면은 오히려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역발상의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이에 견주어 월이가 이브를 따라 날아가게 된 우주공간은 천연색이다. 인간들이 퇴행된 고도비만의 모습으로 디지털 컨베이어시스템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뮤직비디오 초기 시대를 열었던더 월을 연상시킨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콘베이어 시스템을 따라 움직이다가 고기로 갈려져 나오는 충격적인 영상이 있다. 획일화된 교육을 비판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들의 모습은더 월에서만큼이나 세기말적이다.

 

인간들이 고깃덩어리처럼 퇴화하고 무감정의 상태로 안락한 삶만 누리는 것에 비해 로봇들은 인간처럼 진화해 사유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가 마침내 현실이 돼버린다면 이보다 더 세기말적인 상황은 없을 것이다.

 

월이가 그토록 잡고 싶어하던 이브의 손에 마침내 손가락이 생기고 월이와 깍지를 끼는 장면은 그래서 교훈적이다. 고립된 존재, 개체화된 존재로 나날이 변해가는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체온, 즉 함께 하는 삶인 것이다. 그것을 고철덩어리 같은 로봇을 통해 새삼 인지시킨다는 데 이 영화의 휴머니즘이 존재한다. 앤드류 스탠튼 감독은 로봇을 통해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 속에는 여태까지 만들어진 SF영화들, <에이리언><스타워즈> 등 세계 영화역사에 길이 남을 SF명작들에 대한 오마주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타이타닉> 하이라이트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하기 전 이를 막으려는 시스템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우주선이 한쪽으로 기운다. 타이타닉호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갑판 위의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된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사람들은 마침내 바다에 빠져 최후를 맞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간들은 그동안 비대해진 몸을 처박고 있었던 의자에서 튕겨나와 비로소 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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